양생 선무예(仙武藝)는 동양 삼국의 보편적인 수련문화로서 한국적 인식(認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명칭만 선무예가 아니고 한국적 철학과 생활문화가 특성적으로 내포(內包)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선무예이다.
선무예는 신라 때 최치원이 언급한 선도(仙道)의 실천적 몸짓이라고 달리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의 선도나 선무예의 정체성을 논의하는데 최치원의 이 언급은 매우 중요한 사상적, 민족적 그리고 한국의 수련문화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위 글의 내용은 “우리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이른다. 그 교(敎)의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있고, 중생을 교화한다”이다.
최치원의 활동 시기는 통일신라 말인 서기 900년의 전후라고 추정된다. 위 최치원의 비문(碑文) 내용으로 보아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풍류라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선사라는 문헌이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풍류는 우리 민족의 멋스럽고, 참되고, 널리 이롭게 하는 생활을 말한다. 이는 선인(仙人)들의 생활이라고 고대 중국인들은 인식했다. 그것이 중국 역사서 위지(魏誌)를 비롯한 고대의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모두 접한 최치원은 이것을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했고 선사에 자세히 기록됐다고 했다.
풍류가 생활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그 풍류, 즉 생활의 몸짓이 선무예이다. 선무예를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광의(廣義)의 선무예의 선술은 풍류의 보편적인 몸짓을 뜻하고, 협의(俠義)로는 그중에 무예(武藝)에 대한 몸짓이라고 범위를 한정할 수 있다.
선무예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선(仙)의 개념을 확립하여야 한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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