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19. 가출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기사입력 2023/04/14 [21:17]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19. 가출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입력 : 2023/04/14 [21:17]

  © 무예신문


그때 멜버른올림픽 때 구상기 선수와 해변을 얼마나 걸었을까.

가로등이 끝나는 부분에서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그러자 아가씨들 두어 명이 우리들 주위에 밤나비 같이 다가앉았다.

“우리는 지금 오빠들을 미행하고 있어요. 으흥”

”아까 멜버른 선수촌 옥상 스카이라운지에서부터예요” 

다시 손뼉을 치며 까르륵거렸다. 

”우리는 시드니 대학생이에요. 전공은 다르지만, 체육부 응원단이에요“

“이곳 멜버른올림픽 자원봉사로 일해요”

“나는 국제프레스센터에서 일하고, 얘는 식당 요리사 보조예요”

무엇이 우스운지 제각각 떠들었다.

”코리칸 선수의 공중회전 발차기 꿋꿋 베리 나이스!“

구 선수가 내 팔목을 단호하게 끌고 일어섰다. 

밤이 너무 늦은 것 같다. 

빠이빠이! 우리는 그냥 돌아왔다. 

 

코리칸과 구칠이는 청주 야간 중학교를 졸업하자 좀 굵게 놀았다.

근처 공군비행장 미군들과 장사를 했다.

미제 껌, 담배, C 레이션 등 싸게 받아다가 암시장에 팔았다.

“그때 잘 나갔제, 거의 세 배가 남았으니까”

“때로 아편 담배도 나왔잖어?”

“니가 몇 번 걸렸다가 몰수 당했제?”

“이 시키야, 너는 나보다 더 많이 빼앗겼잖아”

구칠이도 대들었다.

또 미군 MP 헌병의 군화 발바닥에 초주검이 되기도 했지만, 손을 뗄 수는 없었다. 

대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얻어맞아 얼굴에 피칠했다.

그래도 보리쌀 한 봉지라도 들고 집에 들어가야 했다.

 

아메리카 군홧발보다 더 잔인한 것은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조폭들이다.

그들에게 상납하지 않고 튀었다든지, 

상납금을 속였다든지, 하면 야산이나 창고에 끌려갔다.

유엔군 야전삽으로 발목이나 팔목이 잘려 나오거나 한쪽 눈알이 뽑혀 나왔다. 

거기에 비하면 미군 헌병에게 워커 발로 찜질 당하는 정도는 보건 체조였다. 

조폭들은 툭! 하면 우리를 샌드백 대용품으로 사용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골고루 개 패듯 얻어맞고 나온다. 

코리칸은 어려서부터 매 맞기에 단련이 되었는지, 

얻어맞고 나면 왠지 시원한 마사지 기분이다.

그러나 구칠이는 그때마다 피를 토했다.

그러다가 정말 구칠이가 죽을 것 같아 나는 그를 끌고 유엔군 노무자로 들어갔다.

 


그때 우리도 군대에 들어가고 싶었다.

녹색 군복과 양철 계급장을 반짝반짝 닦아서 달고 싶었다.

그러나 19살 나이가 차지 않아 안 받아 주었다. 

무기 갖고 싸우든 맨주먹으로 싸우든 쌈질이야 내 전공 아닌가.

이왕이면 해병대 UDT나 공수부대로 들어가려고 했다.

몇 번이나 부대에 찾아가 보초깐 위병 소위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군홧발의 채이기만 했다.

“야 이놈아, 집에 가서 맘마나 더 먹고 와”

그래서 결국 코리칸과 구칠이는 가출했다.

 

유엔군이 많다는 서울 문산 쪽으로 무작정 튀었다.

기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공짜로 올라갔다.

북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헐벗고 집들이 낡았다.

6.25 전쟁의 흉터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코리칸은 독립문을 지나며 어렸을 때 식구들이 어울려 살던 달동네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행촌동은 어둡게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도 거기에선 예전에 큰형과 큰누이 등이 있었다.

거적때기 큰 이불 밑에는 8명이 다정한 다리를 뻗고 자지 않았던가. 

서울과 청주를 몇 년마다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우리는 먼지를 날리며 무악재 고개를 올라가는 미군 트럭 뒤에 올라탔다.

미군 트럭에 몰래 뛰어올라 물건들을 잽싸게 빼어내는 도둑놈들이 많았다.

그래서 무장한 군인들이 뒤에 타곤 했다.

다행히 그날은 폭우가 쏟아져서 경비병이 없었다. 

구파발 헌병 검문소 근처에 다다르자 뛰어내렸다.

길가의 과수원에서 사과 등 훔쳐 먹어가며 계속 걸어갔다.

며칠 만에 미군 부대를 찾았을 때는 말로만 듣던 임진강이었다.

우리는 한국인 노무자 십장을 찾아가 무조건 무릎을 꿇었다.

 

“그저 밥만 먹여주세요. 무슨 일이든 하겠슴더”

“그랴, 요 양아치 새끼덜 따라와”

늙은 십장이 우리를 총감독에게 데리고 갔다.

의외로 녀석은 새파란 애송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외대를 중퇴한 미군 통역관이었다.

 

그는 우리 둘을 멸시하듯 훑어보았다.

“요, 시키덜 넌 뭘 할 수 있어? 특기가 무어야”

“아, 예 쌈질이요, 아니 태권도 선수입니다”

순간 녀석이 내 배를 강타했다. 

바위같이 끄떡없자 다시 얼굴을 삼단 옆차기로 공격했다.

코리칸은 순간적으로 피할까 하다가 그대로 맞아주었다.

때리는 사람의 쾌감을 배가해 주기 위해서다.

 

그런 폭행심리는 청주 암시장 장사 때부터 알았다.

선배들이 때릴 때는 피하지 말고 맞아주어야 한다.

피했다간 더 맞는다.

때리다가 지치는 눈치면 재빨리 죽어주는 시늉도 해야 한다.

공연히 버텼다간 톱이나 부삽을 가져와 내리찍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금니를 물고 버텼다.

그러다가 때리는 사람의 심리는 정복감을 만끽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 본능을 좀 채워주면 간단하다.

 

우리 둘만 밥 먹여준다면 이런 구타는 텐트 쳐놓고 한 달이라고 맞아줄 수 있다.

“좋아! 너희들은 오늘부터 내 경호원이야. 너는 왼팔, 너는 오른팔 알간?”

그리고 소속은 우선 식당이야, 알아먹어?.

“어이 최 상사! 이 친구들 식당장에게 인계하라고”

아까 우리를 데려온 반백의 노무자 김 상사는 넵! 예써! 굽실거리며 명령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 노릇이 시작되었다.

 

임진강 시퍼런 물굽이의 임시막사는 딴 세상 같았다.

아니 별장 같기도 하다.

우리는 수영도 즐기며 최상의 미군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호텔 수준급의 육류 위주 식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수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공수해 왔단다. 

돈 많은 미군 군대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수돗물을 못 믿어서 공수한다는 사실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들의 언행은 한국과 한국인 자체를 멸시하는 듯하다.

흑인조차 우리를 보고 이태리 같은 도둑놈이라고 대놓고 욕했다. 

처음에는 고깃덩어리를 얻어먹는 기분에 발길질까지 참아 주었다.

한 달쯤 지나자 소속과 직장이 안정되었다.

우리는 보복기회만 노렸다.

 


한 번은 나와 구칠이가 똥통 태우는 작업을 했다.

점심을 굶어 가면서 일하다가 저녁 늦게 식당에 귀대했다. 

식당의 고급 메뉴도 매일 달랐지만, 육류도 쇠고기, 닭고기, 말고기 등 다양하다.

거기에다가 약간 데친 것에서부터 완전히 익힌 것까지 원하는 대로 처먹었다.

우리가 보기에 전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처먹으러 온 것 같다.

육류 식단이라 그들의 똥에도 기름기가 줄줄 흘렀다.

느기미…….

사람 살가죽 타는 냄새 같은 노르끼리한 악취에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선임 노무자들은 똥 태우는 작업보다 포탄운반을 선택한 것 같다.

어네스트 존 같은 무거운 무기를 들고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중노동을 오히려 골랐다.

 

우리는 누군가 먹다 남은 식빵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예의 흑인상사 주방장 눈치를 보니 또 밥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우리가 좀 늦었지만 뭐 남은 거라도 주세요”

“저기 쓰레기 짬밥 통이나 건져 먹어, 인마!”

황금 머리털 흰둥이 하사가 눈알을 부라리며 욕을 했다.

우리는 이따금 건져 먹던 꿀꿀이 죽이라도 먹어야 했다.

드럼통 짬밥 통을 깡통으로 휘저으며 건져 먹었다.

 

정말 깜둥이 말대로 돼지 새끼 같은 설움이 북받쳤다.

이런 설움이 어디 한두 번이랴,

이왕 버린 몸 드럼통에 머리를 처박고 두 손으로 건져 먹었다.

그때 뜨거운 수프가 우리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앗 뜨거워! 

뒤돌아보니 프라이팬을 어깨에 멘 흑인상사가 비웃고 있었다.

발맘발맘 부아가 끓어올랐다.

내가 뒤돌려차기로 녀석의 면상을 걷어찼다.

멧돼지 같은 검은 몸체가 철조망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구칠이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시뻘건 프라이팬을 들고나와 금발 흰둥이의 대가리도 갈겼다.

그리고 엎어져 있는 두 놈의 흰둥이, 검둥이의 등허리를 프라이팬으로 다림질했다.

 

두 명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죽는다고 소리쳤다.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던 미군 졸병들이 식칼 등을 들고 뛰쳐나왔다.

MP 헌병들이 공포를 쏘아대며 포위했다.

우리 둘은 프라이팬을 하나씩 들고 쿵푸하듯 춤췄다.

해고가 아니라 당연히 영창감이다.

 

3도 화상이라나? 

그러나 사단 CIC 파견 대장은 우리의 주장을 차분히 들어 주었다. 

우리가 경호를 맡은 한국인 통역관도 핏대를 올렸다.

주한미군 지위 문제까지 들먹이며 인종차별 문제를 따졌다.

미군 측의 폭동 유발 죄로 거꾸로 그들이 영창에 갔다.

대신 우리는 좌천되어 겨울 임진강 경비를 맡아야 했다. 

야밤이면 경비견을 데리고 순찰했다.

서부전선 강 건너 바로 코앞에서 인민군 병사들이 우리를 노려보았다.

칠흑 같은 밤이면 어느 구석에서 귀를 잘라 갈지 살벌하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북한 군인들은 귀도, 메가지도 귀신같이 잘라 갔단다.

그러면 아군 측 공수요원들도 즉시 헤엄쳐 건너가 인민군 귀 짝을 똑같은 숫자만큼 잘라온다.

만약에 아군을 죽이면 우리도 올라가 시체를 만들어 놓고 내려온다.

2천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북한 보복전이 살벌했다.

 

*19화 (끝)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은 픽션입니다.

신상성 소설가
  • 도배방지 이미지

웹소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