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로 종합 13위에 올랐다. 쇼트트랙에서 멀티 메달을 따낸 최민정과 황대헌이 폐회식 기수로 나서며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17일간 이어진 열전 속에서 한국 선수단은 메달 이상의 투혼과 연대를 보여주며 다음 올림픽을 기약했다.
■ 한국 쇼트트랙, 세대교체와 함께 새 역사 한국 쇼트트랙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의 위용을 뽐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총 7개의 메달을 쓸어 담으며 4년 전 2022 베이징 대회(금 2·은 3)를 넘어섰다. 2014 소치 대회(금 2·은 1·동 2)보다도 뛰어난 성적이다.
가장 빛난 순간은 여자 3,000m 계주였다. 한국은 소치, 평창 대회 2연패 이후 베이징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털어내고 8년 만에 다시 올림픽 정상에 복귀했다. 노련함과 패기의 조화가 빛났다. ‘맏언니’ 최민정(성남시청)과 심석희(서울시청)가 중심을 잡았고, 김길리(성남시청)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승부를 갈랐다. 노도희(화성시청) 역시 흔들림 없는 레이스 운영으로 팀에 힘을 보탰다. 세대가 어우러진 완벽한 팀워크가 금빛 결실로 이어졌다.
이번 대회는 한국 쇼트트랙의 상징과도 같은 최민정의 아름다운 마침표이기도 했다. 그는 여자 1,500m 결승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을 7개(금 4·은 3)로 늘렸다. 이는 한국 동·하계 올림픽 통산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6개)을 보유했던 이승훈, 진종오, 김수녕을 넘어선 역사적인 기록이다.
최민정은 대회 직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강하다는 걸 계속 보여준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긴 시간 대표팀을 이끈 에이스의 퇴장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는 당당히 전설로 남았다.
바통은 자연스럽게 김길리에게 넘어갔다. 김길리는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3,000m 계주에서도 우승에 앞장서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에 올랐다. 여기에 1,000m 동메달까지 더해 총 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최민정이 차세대 에이스로 지목한 김길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그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과감한 레이스를 펼치며 한국 쇼트트랙의 미래를 책임질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밀라노는 베테랑의 품격 있는 퇴장과 신예의 화려한 등장이 교차한 무대였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한국 쇼트트랙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 스노보드, 열악한 환경 속 역대 최고 기록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에 새 이정표가 세워졌다. 여고생 국가대표 최가온이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대표팀 맏형 김상겸(37·하이원)이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 유승은이 여자 빅에어 동메달을 보태며 한국 설상 종목 역대 최고 성적을 완성했다.
최가온은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승부였다. 1차 시기에서 크게 넘어지며 의료진이 코스 아래로 내려오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들것에 실리면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절뚝이며 나선 2차 시기에서도 다시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3차 시기. 고통을 참고 도전한 고난도 기술을 완벽히 성공시키며 90.25점을 찍었다. ‘하프파이프 최강자’로 군림해온 클로이 킴(88.00점)을 넘어서며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번 금메달은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 역사에서 설상 종목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빙상 중심이던 한국 동계 스포츠 지형에 변화를 알린 역사적 순간이다.
최가온은 202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허리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명의 기로에 섰다. 당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고, 그 도움은 2년 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롯데는 2014년부터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사를 맡아 약 300억 원을 지원하며 설상 종목의 기반을 다져왔다.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 설상 환경이 점차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불교계의 지원도 눈길을 끈다. 호산스님(봉선사 주지)은 2003년 불교계 최초로 ‘달마배 스노보드대회’를 창설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나섰다. 장학금과 장비 지원은 물론 템플스테이를 통한 정서적 지원까지 이어오며 꿈나무들의 산실을 만들었다. 달마배 대회는 이제 국제대회 수준으로 성장했다.
열악한 훈련 환경과 인프라 한계를 딛고 일군 성과라는 점에서 이번 메달들은 더욱 값지다. 개인의 투혼, 기업의 후원, 종교계의 뒷받침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다.
■ 한국 피겨, 다시 확인한 현실과 가능성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또 한 번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지만 시상대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노메달’이라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 싱글은 새 역사를 썼고, 여자 싱글은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현실과 희망이 교차한 무대였다.
남자 싱글 차준환(서울시청)이 총점 273.92점으로 한국 선수 이 종목 역대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차준환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15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알렸다. 이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5위로 도약했고, 이번 대회에서는 4위에 오르며 매 대회 순위를 끌어올렸다. 꾸준한 상승 곡선이다. 특히 올 시즌 스케이트 교체 등으로 발목 상태가 온전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3위와 불과 0.98점 차로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싱글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이해인은 첫 올림픽 무대에서 흔들림 없는 연기를 펼쳤다. 프리스케이팅 140.49점, 총점 210.56점으로 8위를 기록하며 시즌 최고점을 작성했다. 비록 개인 최고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을 증명했다. 신지아 역시 성장세를 보였다. 프리스케이팅 141.02점(감점 없음), 총점 206.68점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24년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점수를 넘어선 성과다.
한국 피겨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것은 세계 정상권과의 기술 난도 차이, 가산점과 프로그램 구성 점수에서의 경쟁력이 메달을 가른다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남자 싱글의 약진과 여자 싱글의 성장세는 다음 올림픽을 향한 가능성과 희망을 함께 남겼다.
■ 한국 빙속 24년 만에 ‘노메달’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이번 대회에서 끝내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한국 빙속이 올림픽 무대에서 노메달에 그친 것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24년 만이다. 한국 빙속은 김윤만이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역사를 시작했다. 이후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거치며 올림픽에서 금 5·은 10·동 5개 등 총 20개의 메달을 쌓았다.
그러나 밀라노 대회는 출발부터 불안했다. 세대교체가 지연되며 출전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1992년 이후 최소 규모인 8명만이 빙판에 섰다. 기대를 모았던 남녀 500m에서 김준호는 12위, ‘포스트 이상화’로 불린 김민선은 14위에 머물렀다.
남녀 매스스타트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정재원과 박지우가 메달에 도전했지만 순위 경쟁에서 밀렸다. 단거리와 전략 종목 모두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한 셈이다.
빙상계 안팎에서는 이번 결과를 구조적 문제의 표출로 본다. 간판스타 은퇴 이후 체계적인 육성과 과학적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채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24년 만의 ‘노메달’은 한국 빙속이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재도약도 어렵다는 경고장으로 남았다.
■ 여자 컬링, 4강 문턱서 멈췄다… 메달 도전 아쉬운 마침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4강 진출에 실패하며 메달 도전을 마무리했다. 상승세를 이어오던 터라 아쉬움은 더 컸다. 스킵 김은지를 중심으로 한 한국(세계랭킹 3위)은 캐나다와의 라운드로빈 최종 9차전에서 7-10으로 패했다. 최종 성적은 5승 4패. 상위 4개 팀에 주어지는 준결승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이번 대회는 10개 팀이 풀리그를 치른 뒤 4강 토너먼트로 메달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이번 대표팀은 경기도청을 주축으로 꾸려져 8년 만의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다. 상승 흐름도 분명했다. 2023년 팬컨티넨털 컬링선수권대회와 그랜드슬램 ‘내셔널’에서 우승하며 한국 팀 최초로 메이저 대회와 그랜드슬램 정상에 올랐다. 2024년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계선수권 4위로 올림픽 출전권도 확보했다.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맞이한 올림픽이었지만, 단기전 특유의 긴장감과 촘촘한 순위 경쟁은 녹록지 않았다. 승부처에서 나온 한두 차례의 미세한 실수가 순위를 가르며, 기대를 모았던 도전은 아쉽게 멈춰 섰다.
■ JTBC, 올림픽 단독 중계 책임론 확산
이번 대회가 JTBC의 독점 중계로 치러지면서 ‘보편적 시청권’ 훼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공공성이 강한 스포츠 이벤트가 특정 채널을 통해서만 소비되는 구조가 과연 타당한가를 두고 비판 여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JTBC는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경기에서 최가온의 금메달 확정 순간을 본 채널에서 생중계하지 않고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시청자 불만이 쏟아졌다.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못한 편성 판단이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여자 컬링 한일전 중 부적절한 그래픽이 노출되며 중계 완성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경기 하이라이트나 쇼츠 영상 공유가 제한되면서 대중 접근성이 떨어졌다. 과거 올림픽에서는 SNS와 유튜브를 통해 주요 장면이 빠르게 확산되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렸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관련 영상이 쉽게 공유되지 않았다.
JTBC는 이번 동계올림픽뿐 아니라 향후 열릴 동·하계 올림픽과 2026 북중미 월드컵, 2030년 월드컵까지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의 국내 단독 중계권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2026년 FIFA 월드컵 역시 단독 중계가 예정돼 있어 논란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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