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에이라는 브라질 무예인 동시에 춤이고, 음악이며 하나의 문화적 의례다. 카포에이라의 무대는 ‘호다(Roda)’다. 원을 뜻하는 호다는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선 공간이다. 그 가운데 두 명의 카포에리스타가 들어가 몸을 겨룬다. 주변 사람들은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박수를 친다. 승패를 가르는 일반적인 격투기와 달리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공격과 회피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수련생들은 선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카포에이라를 익힌다. ‘메스트레(Mestre)’라 불리는 사부는 기술뿐 아니라 카포에이라의 역사와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카포에이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흔히 16세기 이후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카포에이라를 전했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브라질에 정착한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문화와 신체 활동이 카포에이라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분명한 것은 카포에이라가 노예제라는 극단적인 억압 속에서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체문화와 음악, 공동체 정신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됐다는 점이다. 카포에이라는 오랫동안 범죄와 폭력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때는 거리에서 단속과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카포에이라의 운명을 바꾼 인물은 메스트레 빔바(Mestre Bimba)다. 바이아에서 활동한 그는 범죄와 폭력의 이미지에 갇힌 카포에이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기존 무예에 다른 격투 기술을 접목하고 훈련법을 체계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카포에이라 헤지오나우(Capoeira Regional)’를 발전시켰다.
빔바는 1932년 살바도르에 학교를 열었고, 1937년 바이아 주정부로부터 공식 교육기관 등록을 받았다. 거리에서 전승되던 카포에이라가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되는 전환점이었다. 학생과 중산층 등 새로운 수련층을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이미지도 달라졌다.
카포에이라를 제대로 만나고 싶다면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주의 주도인 살바도르로 향하는 것이 좋다. 살바도르는 카포에이라의 중심지로 꼽히는 도시다.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역사와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으며, 카포에이라의 전통을 이어가는 수많은 사부와 수련관, 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구시가지인 펠루리뉴는 살바도르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브라질 북동부의 헤시피와 올린다도 카포에이라 여행에서 함께 둘러볼 만한 도시다. 두 도시는 식민시대 건축과 음악, 춤 등 브라질 북동부 특유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올린다는 오래된 거리와 알록달록한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으로 유명하다.
카포에이라 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싸움의 기술이 담겨있고,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음악과 공동체가 있다. 카포에이라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경계에 있다. <계속>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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