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스모(相撲)는 흔히 격투문화로 인식된다. 그러나 상박(相撲)이라는 한자와 그 말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훨씬 넓어진다. 상박은 특정한 하나의 기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시대와 지역에 따라 힘겨루기와 맨손 격투를 표현하던 포괄적인 용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고대 중국에서는 相撲과 각력(角力)이 힘을 겨루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됐다. 角力은 말 그대로 힘을 겨룬다는 뜻이며, 반드시 오늘날 일본 스모와 동일한 경기 형태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문헌에 나타나는 용례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범위가 달랐다. 따라서 같은 한자를 사용했다고 해서 당시의 기법과 경기 방식까지 동일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점은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대 격투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2007년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게재된 연구는 한국의 수박(手搏), 중국의 격투 전통, 일본의 相搏·相撲를 비교하면서 이들 용어가 특정 무예의 명칭이라기보다 당시의 다양한 격투행위를 포괄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명칭이 같다고 기술이 같았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술과 문화가 유사한 개념 아래 표현됐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권법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권법이라고 하면 주먹을 사용하는 기술을 먼저 떠올리지만, 전통 권법에는 손뿐 아니라 발과 몸 전체를 활용하는 다양한 기술이 존재했다.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에도 현각허이세, 구류세 등 여러 자세와 발차기·잡기·넘어뜨리기와 관련된 동작이 등장한다. 이는 권법이 ‘주먹질’만을 뜻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권법과 권법식 격투가 실제 대련으로 전개될 경우 상대를 붙잡고 넘어뜨리거나 제압하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다. 격검 과정에서 칼을 잃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기술 역시 넓은 의미의 맨손 격투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스모의 기원 역시 신화와 역사적 기록을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일본서기』에는 수인천황 7년, 출운국의 노미노스쿠네(野見宿禰)와 당마계속(當麻蹶速)이 각력(角力)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 사람이 발을 들어 서로 차고, 노미노스쿠네가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일본에서 스모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전승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신화·전설적 성격을 지닌 기록으로 보는 것이 학술적으로 타당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특정 인물을 ‘최초의 창시자’로 단정하는 것보다,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힘겨루기와 맨손 격투가 독립된 경기이자 무예적 행위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노미노스쿠네 역시 일본 문헌에서 스모의 시조로 전승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전통적 기원설이다.
‘劉씨가 相撲의 시조’라는 기록을 통해 고대의 인적 이동, 언어의 변화, 이두적 표기, 육로를 통한 문화 교류와 함께 비교 연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相撲·相搏·角力·手搏·拳法은 서로 완전히 같은 기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상대와 몸을 맞대고 힘과 기술로 겨루는 행위를 표현해 온 다양한 언어적 흔적이다.
무예사의 가치는 하나의 명칭을 어느 민족의 독점적인 기원으로 단정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이름과 기술이 어떻게 이동하고 변형되었으며,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무예로 발전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다. 相撲의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는 일은 곧 동아시아 무예의 뿌리와 교류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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