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은 태권도의 날이다. 태권도의 가치와 위상을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해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날이다. 그러나 태권도의 오늘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태권도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은 과연 제대로 기억되고 있는가.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해외에 파견돼 낯선 땅에서 태권도를 알린 1세대 사범들이다. 당시 이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해외 진출 기반도, 인터넷과 같은 정보수단도 없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도복 한 벌과 태권도에 대한 신념만으로 도장을 열고 수련생을 가르쳤다. 그렇게 제자들을 길러내고, 도장을 세우며 태권도의 씨앗을 세계 곳곳에 심었다.
그들에게 태권도는 단순한 무예나 스포츠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알리는 문화의 창구였고,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였다. 특히 1960~70년대 태권도인들의 해외 활동은 태권도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태권도 교육과 시범 활동 등을 통해 태권도의 존재가 현지에 알려졌고, 이후 해외 각국에서 태권도 사범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태권도는 세계적인 무예이자 스포츠로 성장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자리 잡았고,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태극기 앞에서가 아니라 각자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태권도 경기장에서 마주했다.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든 태권도장을 만나는 것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장의 출발점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로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청춘을 바친 1세대 사범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존해 있는 원로 사범들 가운데에도 고국과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자신의 공로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보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후배들이 그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태권도의 날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는가. 매년 기념식을 열고 태권도의 발전상과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태권도를 세계화한 사람들의 이름과 삶을 함께 기억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태권도계가 보다 체계적인 기록과 예우에 나설 필요가 있다.
국기원을 비롯해 세계태권도연맹(WT), 태권도진흥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 재외동포청 등이 협력해 국내는 물론, 해외 원로 사범들까지 활동 이력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구술 채록과 사진·영상·문서 등을 체계적으로 보존해 태권도 세계화의 역사로 남기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공적이 확인된 원로 사범들을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그들의 헌신에 걸맞은 국가적 포상과 예우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후배 태권도인들에게 내가 걸어가는 길도 언젠가는 기록되고 기억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은 없다. 원로들에게는 평생의 헌신을 위로하는 일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태권도가 단순한 경기나 기술을 넘어 역사와 정신을 가진 무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서둘러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서 더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태권의 날’ 만큼이라도 원로들을 초청해 감사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태권도 종주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계 곳곳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태권도의 세계화를 말하는 것은 역사의 절반만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 그들은 가장 먼저 길을 나섰다. 낯선 땅에서 외롭게 도복을 입었고, 태권도의 이름을 알렸으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제는 우리가 그 길을 걸어온 거목(巨木)들에게 박수를 보낼 차례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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