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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수도_03] 한국의 전통무예와 담력 쌓기
기사입력: 2017/04/24 [16:0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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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당수도연맹 남인도 총재 (무예신문)
돌은 나무와 함께 인간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의 무기다. 돌을 잘 던지면 사냥은 물론, 적군을 죽일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돌싸움의 기원은 선사시대에서 부터 찾아 볼 수가 있다. 어떤 이는 길가에 돌을 쌓아 올려놓은 서낭당을 고대인들이 전투에 대비하여 무기를 모아둔 병참기지였다고 보는 이도 있다.

돌을 모아둔 곳에서 승전을 빌다가, 차츰 종교적인 기능만 남아 서낭당이 되었다. 돌은 금속무기가 등장하기 전에 주로 사용하던 무기인 만큼, 돌싸움의 역사는 당연히 매우 오래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에 인류는 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돌을 던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돌을 멀리 던지기 위한 무기인 투석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투석기는 산성 전투나, 소규모 전투에서 사용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돌을 던지는 연습은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올림픽 육상 경기의 투포환, 투창, 원반던지기 등 스포츠는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의 군사훈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돌싸움 풍속이 있었다.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매년 초 패수 강가에 모여 놀았다. 왕은 가마를 타고 나가 사람들과 함께 구경을 하고, 놀이가 끝나면 왕이 의복을 물에 던졌다. 이후 군중들은 좌우로 두 편을 나누어 물과 돌을 서로 뿌리거나 던지고, 소리치며 쫓고 쫓기기를 두세 번 되풀이하고 그만 두었다. 고구려에서 즐긴 돌싸움 풍속이다.

『고려사』에서도 고려 우왕이 돌싸움을 무척 즐겨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를 전한다. 1380년 5월 우왕이 돌싸움을 관람하고자 하니, 이존성이란 자가 “이것은 임금이 마땅히 관람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자 기분이 나빠진 우왕이 부하를 시켜 이존성을 때리게 했으며, 이존성이 도망가자, 우왕이 돌덩이를 집어 던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고려에서는 매년 단오날(5월 5일)에 편을 짜서 서로 기와조각과 돌을 가지고 던지며 싸우는 돌싸움이 풍속으로 전해졌다. 고려 말 유학자 이색(李穡)이 단오석전(端午石戰)이란 글에 남길 정도로 돌싸움은 흔한 풍속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조선 3대 태종 임금은 단오날 돌싸움에서 승리한 척석군(擲石軍)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주고, 상금을 주기도 했었다.

1800년대 초 유득공(柳得恭)이 쓴 『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이런 기록이 보인다.
“삼문(남대문, 서대문, 서소문) 밖의 주민들과 아현동 주민들이 만리동 고개에서 돌을 던지며 서로 싸웠는데, 속설에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 일대에 풍년이 들고 아현동 편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 용산과 마포에 사는 불량소년들 중에는 패를 지어 와서 아현동 편을 돕는다. 바야흐로 싸움이 한참 심해지면 고함소리가 땅을 흔들 정도가 되며,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도 후회하지 않는다. 관에서 가끔 이를 금하는 조치를 취한다. 성안의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하기 때문에 행인들이 모두 돌에 맞을까 무서워 피해 돌아간다.”


이 기록을 통해 1800년대 초 조선의 수도 한성부에 살던 사람들이 날아온 돌에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두려움 없이 돌싸움을 즐겼음을 볼 수 있다.

이곳 뿐 아니라, 종각 거리, 종로 3가 등 도성 안에서도 편을 갈라 돌싸움이 열렸으며, 경상도 김해, 안동, 영덕, 황해도 안악, 평산, 평안도 평양 등지에서도 정월 보름날 돌팔매질하는 놀이가 있었다. 돌싸움은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화합을 도모하는 놀이로 20세기 초까지도 우리 겨레가 즐긴 놀이이자 무예였다.

충주 장미산성에 성 안에서 8∼20㎝ 크기인 강돌을 쌓아놓은 무더기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돌은 성벽 위에서 성을 공격해오는 적을 향해 무기처럼 던지기 위해 모아둔 것으로,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이도, 성을 공격해오는 적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천연의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돌싸움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군사 훈련이다.

신라에서도 돌을 던지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투석당(投石幢)이란 부대가 있었다. 투석당은 돌을 던지는 기계인 포차를 운용하거나, 돌을 던지는 것을 특기로 하는 군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다.

또한 고려에서도 여진족 정벌에서 활약했던 별무반에 석투(石投) 부대 즉 돌싸움을 전문적으로 하는 군인이 있었다.

돌싸움은 실제 전쟁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한다. 1593년 2월 권율 장군이 이끈 조선과 백성들은 행주산성에서 일본군과 맞섰다.  조선군은 신기전을 비롯한 각종무기로 적과 맞섰지만, 1만 군대로 3만 명의 일본군과 대항하기에는 무기가 매우 부족했다. 조선군이 최후로 사용한 무기가 돌이었다.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다 주었고, 돌을 던져 적에게 큰 피해를 줬다. 여기서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행주산성에서 조선군은 투석전까지 펼치면서 적의 대군을 크게 물리치는 행주대첩을 거두었다. 돌싸움의 위력을 보여준 한판 승부였던 셈이다.

이렇듯 돌싸움은 심한 부상이나, 때로는 죽기도 하는 무서운 놀이였지만, 오래도록 전해온 것은 돌싸움은 실전무예였다.

부상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를 주고, 강한 어깨를 만들어주며, 실제 전투와 유사한 경험을 쌓게 해주는 돌싸움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육체와 정신을 강하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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