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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理判事判)을 아십니까?
기사입력: 2021/01/29 [10:2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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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본국검예협회 임성묵 총재  (무예신문)


조선시대, 천민으로 전락한 승려들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깊은 산속에 은둔(隱遁)하여 참선 수행으로 불법을 잇는 이판승(理判僧)과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들의 제반 잡역(雜役)에 종사하면서 사원을 유지한 사판승(事判僧)으로 나뉜다.

 

스님이 되기 위한 수행 과정이 끝나면 어쩔수 없이 이판(理判)이든 사판(事判)이든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판승과 사판승 중에 어떤 스님이 역사에 남을까?

 

대부분 이판승(理判僧)이 남는다. 이판스님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철학’이다. 시대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나는 게 전부이다.

 

성철 스님의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라는 당연하고 뻔한 말로 시대의 화두를 만들어 냈다. 다른 스님이나 일반인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오히려 조롱거기가 될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삶은 일반 절의 주지 스님처럼 목탁 두드리며 불경을 멋스럽게 읊지 않았다. 오히려 산문을 나서지도, 사람을 함부로 만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철 스님을 기억한다. 이러한 이판 스님을 배출했기 때문에 그 힘으로 불교계에서 불미스런 일들이 터져 나와도 문제없이 버티는 것이다.

 

이판 스님들은 대중들에게 남겨줄 철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어려운 참선 수행을 한다. 하나의 철학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이판스님들이 이 땅에 있었지만 이름 석자남기지 못하고, 평생 몰두한 화두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위로의 말 한마디 남긴 것도 없다. 결국 밥만 축내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이판스님들이 거지처럼 누더기 조각을 기워 입어도, 기행을 저질러도, 파괴승이 되어도 뭇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은 그분의 행색과 기행을 보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출가 전 낳은 딸에게 ‘불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무책임하고 인정머리 없는 아주 못쓸 아버지이지만, 스님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통해 그 몹쓸 이름에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에 비난보다는 성불로 추앙 하는 것이다.

 

그런 이판스님의 말은 과학으로 비유하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그 이론을 통해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낸다. 목탁이나 치며 독경하고, 천도제 올리는 스님들은 오래전 이판스님이 만들어 논 이론을 사용하는 기술자로 비유할 수밖에 없다.

 

무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장삼봉에게 무예를 배운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무예사에서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다.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은 무예도 이론과 술기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무예라도 술기만 있고 이론이 없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차 잊혀져간다.

 

무예도 기술이 남는 게 아니라 기술에 담긴 철학과 정체성만 후대에 남는 법이다. 왜냐하면 기술은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이란 위치는 이판이 되어야 하고 그 제자는 사판이 되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사판이었던 제자가 스승의 뒤를 잇기 위해 이판이 되어야 하는데, 사판만 배운 제자가 어떻게 이판이 되겠는가. 그래서 사판만 배운 제자는 이판을 모르기 때문에 기술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3대가 주거니 받거니 흘러가면 그때는 역사가 되고 무맥이 형성된다. 그렇게 되면 달마조사-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처럼 이름이 남게 된다.

 

사부가 사판이면 사판 제자를 길러 낼 것이고, 사부가 이판이면 이판 제자를 길러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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