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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태권도가 세계인의 무예스포츠가 된 것은 태권도 지도자들의 헌신적 단합과 세계화 전략 성공 일선 사범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현재 전 세계에 1억 5,000여만 명의 태권도 수련인구가 있다. 20만개의 도장에서 태극기를 걸어놓고 우리말 구령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연간 70만장의 공인 단증이 국기원에서 발급 전 세계에 발급되고 있다.
태권도 관련 대학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국제 스포츠 면에서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어 70억 지구촌 인구의 공인된 스포츠가 되어있다. 현재 종주국 한국에는 무예 태권도를 이끌어 나가는 국기원과 스포츠 태권도를 이끌어 나가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있다.
73년에 창설된 세계태권도연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국제경기연맹(ISF)으로서 회원국 관리 및 태권도 경기와 심판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이는 국제 스포츠기구이다. 전 세계에 파견된 한국사범은 약 5,000여명으로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 태권도 지도를 통해 민간외교관으로 국위선양을 기하고 있다.
우리 무예 태권도는 삼국시대부터 활발히 성행했음이 역사기록에 남아있다. 고구려 시대 무용촌 고분벽화에서 태권도 겨루기 자세가 묘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들이 태권도를 수련, 태권도 정신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국기원은 모든 승단 심사와 단증 발급이 일원화됐고 태권도 발전의 계기가 됐다.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무예 태권도만으론 세계화가 어렵다고 판단 73년 5월 28일 국기원 전당에서 세계태권도 연맹, 국제경기연맹을 창설 김운용 외교관을 총재로 선임 국제스포츠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지도자들은 정부에 건의 태권도를 국기로서 초, 중, 고, 대학에 체육과정으로 채택시켰고 60만 국군이 태권도를 의무적으로 수련토록 국방훈령 95호를 발령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군은 월남전에도 태권도 지도자를 파견 주월군과 월남군에 태권도를 지도하여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월남전 태권도는 세계화 보급에 큰 역할을 기했다고 본다.
이와 같은 기반 위에서 국제무대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75년 10월 8일에 국제경기연맹총회(GAISF)에 세계태권도연맹이 가맹됐고 1976년 국제군인체육회에도 가맹 정식종목이 됐다. 그러나 태권도가 국제스포츠를 활동키 위해선 IOC 승인을 받는 것이다. 1980년 7월 17일 모스코바 IOC 83차 총회에서 태권도가 당당히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1985년 6월 5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IOC 90차 총회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경기종목으로 채택됐다.
1986년에 세계대학체육연맹(FISU)에 가입하게 되어 대학 스포츠제전에도 정식종목이 됐다. 1989년 4월 26일 IOC 집행위원회에서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1994년 9월 5일 파리 103차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통과됐다. 이는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에 이어 한국스포츠의 쾌거로 국제무대로 향한 도약의 발판이 됐다.
태권도가 세계인이 좋아하는 무예스포츠로 정착되고 올림픽에서 영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선 아래 몇 가지 점을 이행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태권도인들의 대단합이다. 피와 땀으로 이룩한 국기태권도의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요구되며, 집단 이기주의나 태권도에 누가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무예신문에 실린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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