ΰ

미주한인총연합회 윤대기 이사장 ‘레슬링 국가대표, 성공한 재미교포가 되다’

조준우 기자 | 기사입력 2023/10/31 [16:37]

미주한인총연합회 윤대기 이사장 ‘레슬링 국가대표, 성공한 재미교포가 되다’

조준우 기자 | 입력 : 2023/10/31 [16:37]

▲ 미주한인총연합회 이사장 윤대기 ©무예신문

 

한인 사회의 권익과 화합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미주한인총연합회 윤대기 이사장. 1964년 도쿄올림픽 한국 레슬링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윤 이사장은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코치로 활동하다가 중견 물류기업인 ‘PBEXPRESS’를 이끌고 있다. 스포츠인으로 이역만리 미국에서의 성공기를 들어본다.

 

■ 미국에 이민한 계기는.

⇒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중앙대학교에 재학하던 지난 1964년 도쿄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선수에서 은퇴 후 1969년 12월 23일 7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체육회(AAU) 레슬링협회 렉에리(Lake Erie)지부 Cleveland, Ohio가 목적지였다. 레슬링 코치로 초청받은 것이다. 한국 중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 교직에 있어 봤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데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YMCA에서 어린아이부터 중고등학생들에게 자유형 레슬링을 가르쳤는데, 말보다는 실기로 보여주는 형식이어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크라이스트킹 중학교 체육 교사와 케이스웨스턴대학 체육강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언어가 늘기 시작했다.

 

■ 성공한 기업인이다.

⇒ 코치만으로는 이민 생활이 힘들었다. 또 하나의 일자리로 잡은 것이 CAR WASH이다. 그때부터 미래를 위해 저금을 했다. 이후 제철회사로 옮겨 일하다가 1,000달러를 모으고, 2,000달러를 미국 친구에게 빌려 7,000달러짜리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사업을 3,000달러 착수금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 이후 CAR WASH를 인수했고,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나를 도와준 레슬링 선수 출신 WEISS 브라더스에게 지금도 한없는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사업을 해나가던 중에 대학 시절부터 잘 알던 친구 박승일 회장의 도음으로 INTERMODAL TRUCKING을 시작하게 됐다. 그 기업을 모태로 오늘날까지 PBEXPRESS INC를 35년간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어엿한 중견 회사로 발전해 15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 무예신문


■ 후배 체육인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1974년 후반기부터 대한민국 레슬링팀의 전지훈련을 돕고 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다져진 어학 실력으로 미국체육회 산하 레슬링협회의 도움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다. 문화교류 형식으로 고국의 레슬링팀이 이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받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 선수들이 비행장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민박을 제공하며 전지훈련과 시합을 할 수 있게 주선을 한다. 각 도시를 순회하며 교환 경기를 진행한다. 1976년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양정모 선수와 1988년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명우 선수가 전지훈련을 왔던 대표적인 사례다. 나 자신 1964년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선배로서 조금이라도 보답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1986년에는 한국체육대학교와 이곳 Cleveland State University의 자매 교류 협정을 이끌어냈다. 1997년부터 이곳 Cleveland State University와 우리나라 중앙대학교가 이중 학위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영어 티칭 자격을 거의 전 과정 장학금을 받으며 이수하기도 했다.

 

■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1986년부터는 한인회장을 시작으로 이사장 디렉터로 수십 년을 봉사했다. 2020년부터 13개 주를 관장하는 중서부 한인연합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2023년부터 미주한인총연합회에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민들의 바른 정서 함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본인의 뿌리가 대한민국임을 일깨우는 정체성 확립에 중점을 둔다. 앞으로도 고국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할 생각을 품으며 성실히 살 것이다

 

■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금까지 클리블랜드 오하이오에서 53년째 거주하고 있다. 부인과 딸, 아들, 3명의 손자, 1명의 손녀를 두고 있다. 자녀들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모두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어디에 가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한다. 남보다 더 헌신적으로 열심히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다시 한번 내 조국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행운을 기원한다.

  • 도배방지 이미지

윤대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