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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무술 창시자가 되기까지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회장(2)
기사입력: 2012/08/03 [11:0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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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말 서울행을 택했다. 하지만 서울인지 알고 찾아간 곳은 경기도 성남이었다. 시골에서는 성남도 서울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무작정 도장을 찾아가 다짜고짜 “시골에서 올라왔다. 운동 좀 하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태권도 초단, 합기도 4단을 익혔고, 여기에 유도, 복싱, 역도, 육체미, 요가 등을 섭렵했다. 실력이 좋아 보였는지, 얼마 뒤 사범으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대한합기도 9연무관에서 첫 사범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사범들이 그러했듯, 식사비와 교통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을 만큼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무료봉사나 다름이 없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만족을 얻었다.

그러던 중 성남 비행장에 위치한 K16부대 미군 5-6명을 개인지도 형태로 가르치게 됐다. 이때 한 달 관비는 1만원 정도였던 반면, 개인지도는 10만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났고, 이러한 인연으로 K16부대 한국경비대대 대원 50여명을 가르칠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깨달았다.

1977년 7월, 영장이 나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뒤, 유단자 이력으로 일종의 특수부대였던 헌병 특별경호대로 배치됐다. 이때부터는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나 다름이 없었다.

각종 사격대회, 태권도대회에 나가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고, 휴가가 너무 많아 정규 휴가는 반납할 지경에 이르렀다. 휴가 중 한번은 중ㆍ고등학교 시절 내게 합기도를 가르쳤던 J총관장을 찾았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서울 화곡동 도장은 관원 수가 20여명이 불과했다. 그는 내게 힘들다며 도움을 청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도와주겠노라 약속했다. 제대 직전, 사격을 잘해 태릉선수촌 입교 제안이 왔지만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내가 갈 길은 무예인으로서의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대 후, 나는 곧바로 J총관장을 찾았다. 전단지를 돌리고, 광고를 붙이고 3개월 동안 도장 활성화에 집중했다. 관원수가 5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606부대에서 무술을 가르치던 J총관장에게 제5공수에서 무술을 가르쳐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606부대에 나가야 한다며 제5공수를 맡아보라고 제안했다. 606 부대와는 달리 제5공수는 무보수였지만, 기꺼이 응했다. 부대는 인천 부평이었다. 왕복 5시간이 걸렸다.

이 무렵, 군에서는 실전 무술이 급부상하던 시절이었다. 태권도는 최소 1년을 배워야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군은, 3~6개월 내 배워 익힐 수 있는 실전 무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건물은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과 총과 같은 주변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무술, 여기에 단체 교육이 가능하면서도 일격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무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군의 제안에 합기도 35%, 타 무술 20%을 기반으로, 계속된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무술의 골격을 완성시켰다.

수개월 뒤, 5공수여단 장기호 장군 앞에서 해당 무술을 시연했다. 왜 두 손을 모두 펴느냐며 양쪽 다 주먹을 쥐는 것을 권했다. 이에 한쪽은 공격용으로 주먹을, 다른 쪽은 방어용으로 손바닥을 펴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군인들은 지금도 이렇게 배운다. 사실상 주먹을 쥐는 것 보다 손바닥을 가볍게 펴는 게 무난하긴 하다.

그간 익혀왔던 태권도, 합기도, 쿵후, 역도, 복싱, 육체미, 유도, 검도, 봉술, 요가, 킥복싱의 장점들을 모두 집대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간 하루 10시간씩 군인들을 가르치면서 보완하는 과정을 병행했다. 스스로가 무술 창시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무술이 탄생했다. 이때 완성된 것이 현재의 특공무술이다.

1980년 11월, 특채로 경찰대학 무도교관으로 가게 됐다. 태권도와 체포술, 합기도 등 3가지를 경찰들에게 가르쳤다. 경찰 교관으로 가게 되자, 내게 특공무술을 배우던 군인들이 경찰대학 상무관에서 매주 2차례씩 특공무술을 배워갔다. 이후 1981년 4월 22일,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시범을 보였고, 육군참모총장 승인 하에 육군진중무술로 채택됐다. 마침내, 육군의 공식 무술이 된 순간이었다.

※위 내용은 박노원 회장의 주장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며, J총관장 역시 박 회장의 요청에 의해 이니셜로 처리됐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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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인 12/08/07 [16:26] 수정 삭제  
  박노원 회장을 회상하면 역시 무술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을 합니다...고집과 아집...협회는 아무나 낼 수 있지만 무술 창시자는 그 시대와 환경 또한 준비된 실력이 있었기에 오늘 날 특공무술이 탄생되었다고 봅니다...
특공인 12/08/08 [10:39] 수정 삭제  
  특공무술 발전 회장님 존경합니다. 하지만, 특공무술이 더욱더 발전하려면 타 협회도 끌어않고 가시길 바랍니다..
특공무술은 12/08/10 [22:06] 수정 삭제  
  이참에 제대로 밝혀지면 좋을듯싶네요
나성달 12/08/13 [11:33] 수정 삭제  
  세간에 협회야 아무나 낸다고 하지만 무술 창시를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글을 보고 추적을해보자하니 결론이 내려집니다.
군대 무술인 특공무술은 군대 제대로 갔다 온 박노원 창시자가 맞습니다.
장수옥 대한 회장님은 청와대에서 가르쳤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다니지만 언론 및 자료에 따르자면 쓰지도 않은 명칭을 썼다고 하다가 슬며시...군대에서 했다고 발뺌을 하십니다...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무엇을 숨긴다고 숨겨나지겠나 싶습니다...연세도 있고 쿨하시게 일 처리를 하신다면 진정한 무도인이 되시고 귀감이 되십니다. 무도에 전념하신 것에 대해서는 한편으론 존경을 표합니다만....
특공 12/08/13 [11:55] 수정 삭제  
  창시자 거론하시는 분 모시고 발표 및 질의 응답을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 올라 있는 글을 보면 특공 관계자 모셔 놓고 소견 발표 및 질의 응답을 하자는 분이 박노원 창시자이십니다. 여기에 선뜻 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어찌 자칭 창시자라고 하겠습니까? 바야흐로 "특공무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해야만 앞으로 특공무술 발전이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특수대 12/08/14 [11:36] 수정 삭제  
  이제사 특공무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여기서 알게 되어서 속이 시원합니다.관장 님들 구전에 의해서 그런다카더라는 입증되지 않은 속설을 전설처럼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특공무술 전설 속에 창시에 관여한 인물들 처럼 행동을 하고들 있습니다.진실은 이래서 밝혀져야 합니다.계속 연 이어서 스토리가 나올 텐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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