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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던 고릴라와의 사투
나한일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1)
기사입력: 2013/08/28 [19: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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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일 총재 © 무예신문
 
나한일 이란 이름 석 자는 대중에게 배우로 먼저 알려졌다. 용의눈물, 야인시대, 영웅시대, 태조 왕건, 연개소문 등에서 매번 인상 깊은 연기력을 선보였기 때문. 하지만 그는 배우 이전에 정통 무예인임을 강조한다. 거친 풍파를 거친 한 무예인의 굴곡 많았던 인생사, 그 속에 해동검도와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지난 1954년 12월 1일, 나는 충남 서천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한결같이 바르게 자라’라는 뜻으로 한일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어릴 때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파로, 국내 유일의 국영기업이었던 장항제련소 소장으로 근무하셨다. 막내인 탓에 과잉보호를 받았다. 왜소한 체격에 조용한 성격이었다. 겁도 많아 말썽과는 거리가 멀었다. 싸움이 일어나면 도망부터 치기 일쑤였다. 8살 되던 해, 집에서 5분 거리의 장항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집은 당시 내로라하는 부자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방만 36칸이었다. 지역에서는 누구라도 우리 집을 알 정도였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5~6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항상 이들 중 한명이 나를 학교까지 배웅했다. 도시락 한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반찬이 가득 담긴 찬합과 함께 밥을 지어 왔다. 밥이 오면 친구들이 줄을 섰다. 나는 배급된 옥수수빵이 먹고 싶어, 가위바위보를 해 이긴 친구와 밥을 바꿔먹곤 했다.

내게는 과외선생님도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덕분에 성적은 중상위권을 항상 유지했다. 운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가진 장난감을 부러워하곤 했다. 나는 장난감 등을 빌려줬고, 친구들은 골목대장마냥 나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12살 때였다.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병원에서는 골수염이라고 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균이 심장으로 가, 심장병의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위중한 상태였다. 집에서는 좋은 약이란 약은 죄다 구해왔다.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몸은 점차 호전돼 갔다.

당시만 해도 충청도에는 괜찮은 중학교가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당시 명문이던 군산중학교를 원하셨지만, 담임선생님은 바로 아래 2번째 명문인 군산남중학교를 추천했다. 성적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군산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머리회전도 빨랐지만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반면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인지, 점차 운동에 자신이 붙었다.

중학교 진학 후, 야구부에 가입했다. 야구를 썩 잘 해, 주전으로 활약했다. 야구가 좋았다. 하지만 신은 내게 야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몸을 풀던 중 날아온 공에 나는 얼굴을 맞고 콧대가 부러졌다. 집과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날로 나는 야구부에서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야구 감독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즈음, 서천에 위치한 정도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했다. 이때 도장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창고를 빌려, 입구에 청도관이라고 써놓은 것이 전부였다.

나는 여전히 체격이 작았다. 내 번호는 10번, 앞에서부터 10째로 작은 키였다. 어느 날부턴가 2교시가 끝날 때쯤, 가장 덩치 가 큰 녀석이 내 도시락을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별 수 없었다. 녀석의 별명은 고릴라, 우리 반 싸움 대장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늘 도시락을 빼앗겼다. 창피해 집에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점심때마다 매점에서 빵을 사먹곤 했다. 싹 비운 도시락을 보고, 집에서는 잘 먹는다며 좋아했다. 이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다보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고릴라 타도를 위해,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년 뒤 녀석과 또 같은 반으로 배정됐다. 이를 갈며 태권도를 연마해, 이즈음 빨간 띠를 땄다. 녀석에게 실력발휘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벼르고 벼르던 1969년 어느 날, 그날도 고릴라는 어김없이 내 도시락을 가져가려 손을 뻗쳤다. 나는 녀석의 손목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야. 고릴라, 너 나랑 한판 붙자.” 과감히 던진 도전장. 결과는 처참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죽도를 맞았다. 잽 한번 날려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고릴라가 싸오라는 반찬을 싸가야 했다. 계란프라이가 먹고 싶다면 계란프라이를 바쳐야 했다.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먹성이 좋아졌다며 기뻐하셨다. 내 속도 모른 채….

나는 더 열심히 태권도를 연마했다. 이대로는 분해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두고 봐라. 내 반드시 널 때려 눕혀주마. 이를 갈고, 또 갈았다. 내 중학교 시절은 그렇게 ‘고릴라와의 대결’이라는 최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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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첨 13/08/31 [23:40] 수정 삭제  
  다음회 기대된다 고릴라와의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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