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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를 무너트리고 심검도를 배우다
나한일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
기사입력: 2013/10/31 [15:1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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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일 총재© 무예신문
 
고릴라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태권도 연마에 집중했다. 벼르고 벼르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 다시한번 고릴라와 붙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날도 달려들었다.

실컷 두들겨 맞았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 집에서는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7일째, 고릴라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도시락을 2년만에 먹었다. 꿀맛이었다. 3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던 고릴라가 녀석의 부모님 손에 끌려 우리 집에 왔다. 고릴라는 내게 잘못했다며 빌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두려워 학교에 가지 않고 만화가게 등을 전전하다 선생님께 잡혔다는 것.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인 즉슨, 선물로 받은 커터칼로 연필을 깎는 나를 본 뒤, 그 칼로 뒤에서 자기 목을 찌를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 그렇게 사과를 받았지만, 억울한 감정이 풀리지 않았다. “반 아이들 앞에서 2대만 맞아. 그러면 용서하겠어” 고릴라가 이에 응했다.

다음 날, 나는 자갈 대여섯개를 주머니에 넣고 등교했다. 자갈을 주먹에 쥔 채, 아이들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빡’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만 부러져 버렸다. 그 이후 내 별명은 ‘쌈꾼’으로 불렸다. 고릴라를 무릎 꿇게 한 쌈꾼. 그렇게 내 학창시절은 지나갔다.

그 해 12월 어느 날, 또다시 류마티스가 재발했다. 의사와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리를 자를 수도 있다는 것.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집을 박차고 가출을 결행했다. 돼지 저금통을 깨고 새벽 5시 5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살기 위한 도피였다.

서울역에 내려, 무작정 버스를 탔다. 20번 쌍문교통, 나는 그 버스 안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집을 나왔다고 하니, 절에 가자고 제안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화계사라는 절에서 생활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나를 찾아 오셨다. 아버지는 서울 전학과 동시에, 신길동 고모집에서 생활하도록 해주셨다. 나는 고모집과 화계사를 오갔다. 검도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당시 나는 화계사에서 신의철 목사 등과 함께 숭산대선사의 제자 김창식 선생에게 심검도를 배우고 있었다. 체질에 맞았다. 그 즈음, 류마티스 증상이 사라졌다. 오진이었는지, 아니면 검도 덕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영화와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서라벌 예술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전공교수는 “너희들이 연극을 해봐라. 그러면 학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연출이 전공이다 보니, 동기들 중에 조명, 분장 등 스텝들은 모두 있었지만 배우가 없었다. 동기 중 여자배우를 구했지만, 남자 배우는 다들 꺼려했다. 제비뽑기 결과, 내가 남자배우로 결정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가 2명뿐인 연극. 놀랍게도 학교연극제에서 작품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연극에 그리고 연기에 푹 빠져 들었다.

▲대학생 시절, 조계사에서 검도시연 직후(1972, 맨 앞줄 오른쪽 첫번째)© 무예신문
 
직접 극단을 만들 결심을 했다. 우리 공연인 ‘쥐덫’이 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것을 적극 활용했다. 여기에 대상 받은 트로피와 상장 등을 조작해 아버지를 설득했다. 신문에 소개됐다는 사실에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두 다 놀랐다. 선배가 “대성할 것 같다. 극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8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지금 시세로 집 한 채 값이었다. 나는 까뮈의 ‘페스트’를 국립극장에 올리며, 포스터에 괄호 치고 계엄령이라는 글을 적었다가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1975년 대학 졸업 후, 입대했다. 육군 수도군단사령부에 배치됐다. 이 당시 남침 중 붙잡힌 북한군과의 격투에서 국군이 박살이 났고, 이에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각 부대마다 무도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입대 당시 적어 낸 내 신상명세를 토대로 우리 부대는 검도부대로 변신을 꾀했다. 부대원들에게 검도를 가르쳤다. 적성에 맞았다.

군대 제대 즈음,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리공장이 부도가 났다.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제대 후, 나는 다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극단 아카데미에 들어가 ‘쥐덫’ 100회 공연까지 마칠 수 있었다. 얼마 뒤 지인 소개로 기독교방송국 성우에 도전, 270:1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성우가 됐다. 방송사와의 첫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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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인 13/11/06 [14:13] 수정 삭제  
  해동검도의 대명사가 나한일씨 인데 지금 나한일 해동검도도장 찾기 힘드네요. 이유야 전부알죠. 다시 정비하여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신이 아닌이상 실수가 있는법이죠. 검리 역사를 떠나 해동검도가 좋은무도라 생각하는 사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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