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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스타, 해동검도 전도사로 나서다!
나한일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최종회)
기사입력: 2013/11/28 [15:0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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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일 총재© 무예신문
 
지난 1978년 3월, 기독교 방송국에 입사했다. 이때, 미국으로 건너갔던 김창식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KBS ‘9시에 만납시다’에서 심검도를 소개해야 하는데, 시범 보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별 수 없이 내가 시범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다시 심검도를 보급하게 됐다. 고려대학교 운동장에서 새벽 6시부터 7시 30분까지 학생들에게 심검도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십여명에 불과했지만, 점차 늘어나 300여명에 달했다. 동국대, 서울대, 연대 등에 심검도 동아리들까지 생겨났다. 명문대 학생들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 월급을 받아 이들에게 빵과 우유, 트레이닝복과 검도용품을 사주며 가르쳤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심검도를 가르치던 중 나는 계엄군에 체포됐다. 3달 간 서빙고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인 즉슨, 학생들이 검도를 배우면서 정부의 데모 진압에 어려움이 커졌다는 것. 국정원에서 대학교와 방송국을 감시하던 상황에서, 기독교 방송국에 다니는 나한일이 공권력에 대항하는 행동대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기독교방송국 사장이 직접 나서, 보증까지 선 후에야 나는 서빙고에서 나올 수 있었다. 긴 고문으로 지금도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즈음 내가 느낀 것은 심검도의 한계였다. 어느 날, 오른 손이 왼쪽에 비해 두꺼워져 있음을 알게 됐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심검도는 한쪽 손만 사용한다. 이에 지난 1982년 두 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심검도를 보완해나갔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일로 심검도에서 파문을 당했다. 사실상 종교적인 갈등. 도복 등에서 종교색 너무 강했고, 무도에 대한 커리큘럼을 만들려다 보니, 종교적인 것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던 찰나였다.

지인 소개로 박대양씨를 만나, 기천문을 배웠다. 그는 기 치료로 사람을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했다. 당시 현진 영화사 사장 조카가 지체장애 아동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내가 직접 운동을 가르쳤다. 어찌 됐든 상태가 좋아지자 강남에 체육관을 내줬다. 체육관을 개관한 뒤, 하루는 박대양씨가 술을 먹고 와 자신에게 모두 다 달라고 요청했다. 크게 싸우고, 도장에서 쫓아냈다. 그때 나는 도장에서 최태민 목사를 가르쳤다. 이제 운동을 그만두고 성우와 배우를 하겠다고 하자, 며칠 후 한 봉투에 ‘해동검도’라고 써있는 글자를 적어왔다.
 
운동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다듬어지는 것이라며. 내가 만든 무예니 내 것으로 하라고 조언했다.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최 목사는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본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작비용을 지원해줬다. 고마웠다. 역사적 근거를 찾아 무예도보통지도 완역하며, 계속해서 교본을 만들어 나갔다. 10여권을 연이어 출간했다. 현재 수많은 해동검도 협회에서는 유일한 성과다. 해동검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84년 해동검도협회를 만들었다.

▲ 2000년 KBS 역사드라마 태조왕건© 무예신문
 
그러던 중 드라마 ‘훠이훠이’가 대박을 냈다. 시청률 60%에 달했고, 이어서 1988년 주연으로 출연했던 ‘무풍지대’가 시청률 68%까지 치고 올라갔다. CF 섭외가 줄을 이을 정도였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집중됐다. 내 취미가 해동검도라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방송됐다. 해동검도를 세상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 싶어 열과 성을 다했다. 지관을 만들겠다며 전국에서 연락이 왔다. 지부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현상까지 일었다. 많을 때는 도장수만 1천개가 넘었다. 체육관 개관한다면 쫓아 가 싸인회를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을 누볐다.

1994년 ‘모래시계’가 방영되며, 검도라는 종목이 크게 인기를 누렸다. 특정인에서 대중무예로 인식되는 데, 도움이 됐다. 모든 무예 중 전통무예라는 단어를 끄집어 낸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당시 배우 이정재는 대한검도를 사용했다. 하지만 해동검도가 전국에 확산돼 있고, 전통무예라는 인식이 강해 해동검도의 인기가 급부상했다. 무풍지대가 해동검도의 1차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면, 모래시계가 2차 르네상스를 열었다.

그 다음부터는 ‘태조왕건’, ‘용의 눈물’ 등이 방영되며 해동검도의 위치가 점차 확고해졌다.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들도 반사이익을 보게 됐다. 1997년 여름, 제1회 전국해동검도대회를 홍익대학교 실내체육관에서 개최했다. 지금도 매년 11월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해동검도의 세계화는 나의 오랜 꿈이자, 목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그 간 신경을 쓰지 못했다. 현재는 미국, 멕시코 등에 지부가 설립돼 있다. 우선은 우후죽순격인 국내 질서를 바로 잡고, 지도자들을 해외에 내보내 발전과 전통성을 살릴 수 있게끔 지원하는 등 해동검도를 위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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