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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 불모지, 유럽개척에 나서다!(최종회)
대한호국무예합기도협회 유선종 총재
기사입력: 2014/06/27 [12:5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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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호국무예합기도협회 유선종 총재© 무예신문

 
1976년 첫 도장을 열었을 당시, 국술원의 손정선 총관장이 합기도 술기를 새롭게 정립시켰다. 신천지가 따로 없었다. 크게 매료된 나는 오로지 새로운 술법 연마에 집중했다. 체육관이 안정된 터라,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981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체육관으로 인해  건물이 울린다며 주변 항의가 빗발친 것. 이때만 해도 체육관을 할 만한 건물이 많지 않았다. 결국 쫓겨나다시피 사당동으로 체육관을 옮겨야 했다. 관원들의 이탈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사범 및 지도자 코스를 밟기 위해 체육관을 찾던 친구들은 꾸준히 도장을 찾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 즈음, 매 맞지 말고 다니라며 합기도를 사사했던 동생 3명 모두 나의 영향으로 가평과 철원, 안양 지역에서 체육관을 열었다. 9남매 중 나를 포함해 형제 4명이 모두 합기도 체육관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집안 모임 때마다 합기도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몰랐다. 합기도가 평생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합기도를 알리고 싶었다. 1985년부터 체육관 운영 외에 기도회 활동에도 전념했다. 경기위원장과 심판위원장, 시범단 등을 맡았다. 합기도를 대중화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합기도 시범도 선보인 것도 이 즈음이었다.

방송 후, 네덜란드에서 고려 마샬아츠 학교를 세운 벨리 교장으로부터 시범을 보여 달라는 요청과 함께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을뿐더러, 계획에 없던 일이라 고민이 이어졌다. 해당 학교장은 학생이 120명이라며 이곳에서 합기도를 함께 활성화시켜 보자고 거듭 재촉했다. 1986년 고심 끝에 네덜란드행을 택했다. 현지에 학생은 불과 12명뿐이었다. 너무도 실망스러웠지만, 이왕에 온 만큼 무언가 결실은 거두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은 합기도부터 알릴 필요가 있었다. 시범과 세미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6개월여가 지나자 학생수는 1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보람이 느껴졌다. 내친 김에 유럽 12개국을 돌며 시범과 세미나를 병행했다. 유럽에 합기도를 자리 잡게 만들어야겠다는 목표점이 생겼다. 하지만 이 꿈은 오래지 않아 무산됐다. 제자들이 체육관을 열려고 할 때마다, 벨리 교장은 수입의 50%를 요구하는 등 돈 욕심을 냈고 제자들은 체육관 개관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유럽현지 제자들이 해준 깜짝 생일파티 도중(1986)© 무예신문

 
나는 체육관이 늘면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심사비만 관여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거절했다. 결국 돈벌이로 합기도를 이용하는 그와 결별했다. 계약관계로 인해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유럽행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1988년 11월경, 한국으로 돌아왔다. 상당히 고생했음에도 결과가 없어 안타까웠다. 체육관을 다시 운영했다. 유럽에서 못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제자들을 지도했다. 제자들이 차린 체육관수가 점차 늘어났다.

대한기도회 고단자회를 만드는 등 조직 체계화와 지관을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여전히 합기도는 대중과의 간극이 존재했다. 합기도를 알리기 위해, 지난 1991년부터 합기도 시합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대한기도회가 분열했다. 개혁을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한기도회에 미련을 접고 대한호국무예합기도협회 법인을 냈다. 협회를 통해 합기도 알리기에 힘썼다.

지금도 네덜란드 등 유럽지역에서 제자들과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가평대회를 해외대회로 격상시키려고 한다. 또한 못 다 이룬 유럽지역에 합기도를 점화시키고픈 목표도 여전히 내게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꿈을 위해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합기도가 있어 인생의 목표점이 있었고 또한 평생 합기도와 함께 살아왔기에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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