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세계화 - 첫 수행의 기억... ‘태통령’을 마주하다
나의 첫 수행.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당시 김운용 총재님을 보좌하는 비서진은 나를 포함해 무려 16명에 달했다. 워낙 많은 직책을 맡고 계셨기에 대한체육회(KSC), 국기원(KKW), 세계태권도연맹(WT), 대한태권도협회(KTA) 등 각 단체마다 별도의 비서진이 꾸려져 있었다. 그 시절 세계태권도연맹 사무국은 국기원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대한태권도협회 소속 직원 신분으로 IOC 위원실에 파견되어 매일 그곳으로 출근했다. 1999년 12월 어느 날, 나에게 생애 첫 ‘수행’ 임무가 떨어졌다.
비서진 중에서도 수행팀은 주로 연륜 있는 태권도계 선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재님께서 공식 행사에 참석하실 때면, 사전 수행팀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좌석 배치와 이동 동선을 철저히 점검하며 총재님을 기다린다. 본진 수행팀으로부터 “곧 도착한다”는 연락이 오는 순간, 현장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중압감이 감돌았다.
행사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총재님의 차량에는 수행 기사와 대한체육회 비서실장, 그리고 연맹 소속 선배 한 명이 동승했다. 그 무렵의 나는 감히 총재님의 차량에 동승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첫 수행의 날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번듯한 정장은 한 벌 있었지만, 그 위에 걸칠 코트 한 벌 없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한겨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행사장에 나는 얇은 정장 차림으로 나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모두가 두툼한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나 홀로 서슬 퍼런 칼바람을 맞으며 덜덜 떨고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시던 총재님께서 그런 나를 힐끗 보시더니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이렇게 추운데 왜 코트를 안 입고 있어. 그러다 감기 걸려.” 입사 면접 이후, 총재님이 나에게 건네신 인생의 두 번째 말씀이었다. 그날 퇴근길, 나는 곧장 시장으로 달려가 코트를 샀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장면이다.
총재님께서 차량에서 내리는 순간이면, 형용하기 어려운 기운이 주변의 공기를 단번에 바꾸어 놓곤 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아우라’였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분위기를 장악했다.
많은 이가 김운용 총재를 스포츠와 태권도 분야의 입지전적인 인물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군 중령 출신으로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들을 몸소 관통해 온 인물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영어에 능통한 엘리트 장교로 활약했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경호실 보좌관(차장)을 지냈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국가 권력의 핵심부에서 시대의 흐름을 갈무리해온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눈빛, 걸음걸이, 심지어 짧은 침묵 속에서도 세월이 쌓아 올린 범접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총재님을 떠올린다.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그가 쏟아부었던 광기 어린 열정과 집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궈낸 거대한 성취들 말이다. 세간에는 그의 공과 과를 두고 여러 평가가 엇갈리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그의 ‘공’은 ‘과’보다 훨씬 크다. 그 공이 대한민국의 국익과 스포츠 외교, 그리고 태권도의 위상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면, 그는 마땅히 그에 걸맞은 평가와 존중을 받아야 한다.
지난 글에서 나는 사범 자격연수 때 총재님을 처음 뵈었고, 멀리서 수행진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고 썼다. 이제 그 수행의 현장 한가운데 서게 되니, 그때와는 전혀 다른 뜨거운 감회가 밀려왔다.
특히 총재님께서 업무차 국기원에 오실 때면, 부원장님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현관 정문 앞에 길게 도열해 그를 맞이했다. 그 광경은 언제나 강렬한 상징처럼 다가왔다.
그는 분명, 태권도계의 대통령, ‘태통령’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태통령’의 곁에서 첫 수행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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